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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사회

제 739 호 응급실 뺑뺑이, 도로 위 사라지는 골든 타임 ​

  • 작성일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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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91
곽민진

응급실 뺑뺑이, 도로 위 사라지는 골든 타임


  9월 30일 기준 구독자 8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강대불(본명 강태원, 28세)은 지난 6일 ‘베트남에서 죽다 살았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는 병원 4곳에서 응급 병상이 부족하고 환자가 의식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진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다섯 번째 방문한 병원에서야 겨우 CT 촬영 등의 조치를 받았다. 병원들이 환자를 떠미는 사이 강 씨는 의식을 잃었고, 마지막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2시간가량이 소요됐다고 한다. 함께 병원을 찾아 헤맨 유튜버는“혹시나 모를 뇌출혈이 있었다면 정말 위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 유튜버들의 이야기로 다시 한 번 관심을 모은 응급실 뺑뺑이 사건들. 이 밖에도 열과 경련 증상을 일으켜 병원 응급실을 찾던 2살 아기가 11곳에서 진료를 거부당해 의식 불명에 빠지거나, 급성 심혈관질환의 50대 남성 환자가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 등 시내 15개의 병원이 수용을 거부했고, 5시간이 지난 뒤에야 울산시로 이송돼 응급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진 환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다.


▲ 응급실 적정시간 내 응급실 미도착률 통계 (사진: https://www.sedaily.com/NewsView/29OCMB0CNT)


의료파업 경과와 현재


  올해 초 정부가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매년 2,000명씩 확대해, 2035년까지 의사 수를 대폭 늘리겠다는 의과 대학 정원 대폭 확대 지침으로 촉발된 정부와 의사 단체 간 갈등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의료 인력 부족과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함이라는 정부 측과 의료 인력 분배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의사단체의 대립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2024년 2월,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해, 전공의와 의과대학 학생들까지 참여해 일부 병원에서는 외래 진료가 축소되거나 중단되었다. 응급 환자 처치와 중증 환자 진료는 계속되고 있지만, 수술이 연기되는 등 의료 서비스에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군 병원과 공공의료기관을 동원하고,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의사단체와 정부 간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파업은 현재까지도 장기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정 갈등 사이 의료 서비스의 혼란에 대한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국민들은 고통과 불안을 호소하며 길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의사 집단 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촉구 (사진: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jqex759wvko)


의료 인력 부족, 절대적인 수보다 핵심을 봐야만


  의정갈등으로 소위 응급실뺑뺑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는데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전문의 부재’가 36.5%로 가장 높았다. 이송된 응급환자의 처치를 위해서는 응급실 의사뿐만 아니라 입원 치료를 이어갈 전문의가 필요한데, 희귀질환도 아닌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질환조차 대응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업에서 활동 중인 의료진들은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근무 환경이 열악해지고, 의료 서비스의 질은 자연스레 저하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의 문제를 살펴보면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 단위 인구당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므로 의사 인력 증원은 필요하다는 주장은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반드시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우리나라 의료문제의 핵심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은 ‘필수진료’ 과목 의사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순은 해결되지 않고 의사의 절대적인 수만 늘어나는 표면적인 해결책이다.


  현재 의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필수진료과 의사부족 문제는 중층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소아청소년과 등 수입이 다른 과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소위 ‘비인기과’로 전락한 필수과목에 대한 ‘수련 수당’을 마련하고, ‘필수 의료’ 영역에 수가를 인상해 의사 인력 배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흉부외과, 외과 등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수련 수당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전공의 확보에 실패했다. ‘인기과’는 수련 수당이 아니라 개원 시 가격 조정이 가능해 경제적으로 유리한 비급여 진료가 많을 때 결정된다. 소아청소년과 등의 기피 진료과에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준다고 해도 비급여 진료 등 영리적 의료 영역이 올려놓은 수익 수준에 맞춰 공공 수가를 인상하는 정책은 지속 불가능하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도 산부인과 분만 수가를 늘려놨지만, 오히려 봉직의들이 개원가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해 한계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낮아지는 출산율 속, 의료 서비스의 수가 억제로 여전히 낮은 수익성과 높은 업무 강도, 의료사고 책임 압박은 의사 개인의 부담을 더욱 증가시킨다.


응급실 과밀화 및 규제


  한편, 응급실 과밀화 및 개인과 병원에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는 응급실 규제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응급실 수용곤란고지 관리 표준지침안'에 따르면 시설과 인력, 장비 등 응급의료자원 부족으로 응급환자 수용이 곤란한 경우라 하더라도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선정한 응급의료기관은 중증응급환자를 무조건 수용하도록 하고 있다. 의료계는 응급환자 이송 지연의 책임을 전적으로 의료기관의 환자 거부 탓으로 돌려, 행정편의주의적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며 비판했다. 응급의료기관 수술 가능 여부 등은 이미 중앙응급의료센터 '통합응급의료정보 인트라넷'을 통한 실시간 조회가 가능한 만큼 이를 다시 확인하도록 한 것은 행정적 중복규제에 불과하며, 이같은 행정조치를 이행하느라 오히려 다른 응급환자의 치료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전국 응급의료취약지 (사진: 〈2022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 김승현·신한수·허은정·임도희·김의정, 국립중앙의료원, 2022, p.106)


  응급의료 전문가들은 그간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 한정된 응급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응급의료시스템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응급의료는 '적절한 환자를,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주 핵심이지만 우리나라에 이러한 체계가 돌아가도록 하는 시스템은 전무하다는 것 역시 문제다.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석주 교수도 "우리나라는 환자들이 119구급차 이용 부담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경증 환자들도 119구급차를 이용해 응급실을 이용하고 있다. 이 경증 환자 중에는 외래의 긴 줄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응급실을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대형병원 입원 병상이 부족할 때 응급실 병상을 대체제로 이용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법률안에 따르면, 지역의 모든 의료 기관이 응급환자 수용 곤란 의사를 통보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 119구급상황 관리센터는 임의로 이송병원을 선정해 해당 환자를 이송할 수 있으며, 배정받은 의료기관은 천재지변이 없는 이상 아무리 시설, 인력, 장비 등 응급의료자원이 부족할지라도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이렇게 해줄 것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받은 병원은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야 한다. 게다가 해당 지침에는 무리하게 환자를 받은 의료기관에 대한 책임소재 면책에 대한 내용은 물론 최종 치료가 불가능해 재이송한 데 대한 책임마저 개인과 병원에게 묻고 있다. 여기에 최근 의료소송 등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들로서는 해당 지침안이 시행될 경우 수억원 대 소송은 물론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실질적으로 법원에서는 ‘최종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왜 환자를 받았냐’라는 내용의 판결을 내리고 있는데, 이처럼 개인, 병원에게 압박을 주는 규제들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의료 파업, 그 이후 


  현재 응급실에서는 여전히 긴 대기시간 속 높아지는 환자들의 불안과 의료진의 스트레스 및 과도한 업무 강도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민간 의료 기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으며, 이는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에 많은 이들이 걱정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이하 건정심) 소위원회에서 제시한 ‘의사 집단행동 대비 비상 진료 건강보험 추가지원 방안’은 중증 수술의 수가 인상, 입원환자 진료 공백 방지를 위한 정책 수가 신설 등으로 매달 약 1,882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지난 2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필수 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 1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정부의 초점이 ‘의사 증원’보다는 ‘의료 수가 인상’에 맞춰져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문제는 건강보험 재정이 수가 인상과 10조 이상의 추가 투입을 버텨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의료 수가를 인상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면 건강보험의 재정파탄이 불가피하다. 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건강보험 보장률 감소로 이어진다. 그리고 줄어든 건강보험의 자리는 민간 의료보험이 차지하게 된다.


  의료 민영화는 현재의 의료 서비스의 질을 더욱 저하할 우려가 있으며, 경제적 여건에 따라 의료 접근성이 불균형해질 수 있기에 많은 이들이 반발하고 있는 안건이다. 민간 의료 기관들은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필수적인 응급 치료나 저소득층 환자에 대한 서비스 제공에 소극적일 수 있기에 민영화가 진행될수록, 의료 서비스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피해는 취약계층에 크게 돌아가기에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정부가 무리하게 의대 정원 증가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커진 반발과 여파가 다시 국민에게로 돌아오고 있다. 이처럼 정책 시행에 있어 교육정책의 지침 및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경우, 큰 혼란이 야기될 수 밖에 없다. 의료 인력의 필요성과 배치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 둥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고, 철저한 시뮬레이션과 검토를 통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소통이 필요한 시점이다. 



곽민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