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1 호 [사설] 백년을 위한 제언
올해도 수능 한파 속에서 2020학년도 대학입학 수학능력고사가 끝났다. 이제 본격적인 입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미 다양한 수시전형이 진행 중이며,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와 적성에 맞는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대학 역시 교육이념, 인재상, 학과 특성에 가장 부합하는 우수한 학생의 선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학생과 학교의 건강한 노력과 달리, 최근 입학전형과 관련된 몇몇 사건들은 많은 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심어주었다. 대학 입학전형 방식은 물론 고등학교 교육정책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입학 제도의 첫 번째 특징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크게는 수시전형과 정시전형으로 나뉘며, 각 전형 내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 학생부교과전형, 논술전형, 실기전형 등 다양한 전형이 존재하여, 각 전형별 취지, 기준, 배점 등은 천차만별이다. 입시를 담당하는 전문가들도 각 전형의 특징을 속속 들이까지는 알지 못할 정도라 한다. 대학입시 제도가 도입된 이후부터 지나치게 잦은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도 우리나라 대학입학 제도의 특징이다. 최근의 분석에 의하면, 광복 이후 대학입학 선발 방법은 총 18번 변경되었는데, 이는 매 4년마다 대학입학 전형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대학입학 전형 방법이나 절차에 대한 교육 당국의 직간접적인 개입이 다소 과도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대학 입장에서는 정부의 재정 지원과 연계된 대학평가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입시 관련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중에서도 대학입학 전형 방식의 잦은 변화는 수험생과 학부모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우선 대학입학 전형 방식의 변화는 대학은 물론 대학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선을 심어줄 수 있다. 최근의 특수목적 고등학교와 자립형 고등학교의 폐지 발표를 보면, 학생과 학부모, 나아가 고등학교 교사들이 경험하게 될 혼란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제도는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제도는 단점과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논의되는 새로운 제도의 변경이 미래에 긍정적 결과만을 제공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향후의 대학입학 전형의 방법 및 기준에 대한 논의는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다음의 몇 가지 원칙이 지켜지기를 기대해 본다. 먼저, 새로운 정책의 도입에 앞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러 대안들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그 분석 내용들이 가감 없이 투명하게 토론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교육 현장의 경험과 우려에도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대학의 특성을 반영하여 입시의 자율성을 대학에 보장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있으며, 지역적, 환경적 여건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학에게 일률적 기준과 통일된 지침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대학에게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학생이 누구인지를 고민하고 자율적으로 선발할 권한을 부여하되, 교육 당국은 대학의 선발 과정에서의 불공정, 부정, 비리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지 않고 철저한 조사와 함께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정책이 채택되더라도 백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몇 십 년 동안 만큼은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여 교육 수요자와 공급자로 하여금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대학입학 준비를 할 수 있는 안정감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교육 정책이나 입시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일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적 또는 단기적인 처방은 또 다른 문제와 이슈를 나을 수 있다. 이번 대학입학 정책의 변화에서는 자율성과 다양성을 근간으로 미래의 세대를 위한 백년의 계획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제 681 호 [상명만평] 굳건한 불매운동
황인선 (만화학과)
제 680 호 [기획]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의 섬에 발을 내딛다
독도아카데미 42기수 대학생으로서 이번 독도 여행에 참여 하게 되었다. 독도아카데미는 전국 학보사 기자단, 교육대학교 예비 교사를 상대로 진행한 프로그램으로 기자는 상명대학보 사의 일원으로 이에 참여하였다. 후포항에서 내딛는 독도로의 첫 발걸음 울릉도에 가기 위해 경북 울진에 위치한 후포항에 도착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울진까지 장시간 버스이용으로 허기가 진 우리는 바로 앞 식당에서 새벽 4시에 허기를 달랬다. 전국 각지에서 온 대학생 친구들과 처음 대면하는 만큼 보이지 않는 어색함이 맴도는 식사 시간이었다. 식사 후 자유시간을 가졌는 데, 막 해가 뜨기 시작한 바다와 옅게 깔린 물안개는 여행의 기 대감을 더욱 자극했다. 우리는 이내 바로 울릉도행 여객선에 승선했다. 후포항에서 울릉도까지는 배로 2시간 30분이 소요 된다 했다. 다행히 우려했던 뱃멀미는 잠잠한 바다 덕분에 걱 정 없이 순조로운 출발이 되었다. 독도를 지켜온 우리의 영웅들 독도의용수비대 및 안용복 기념관은 울릉도의 높은 산 위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음에도 이리 저리 부딪힐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고 험난한 길이었다. 길에 대한 걱정도 잠시 이내 우리 시야에는 울릉도의 바다 전경이 들어왔고, 어느덧 정상의 기념관에 입성할 수 있었다. 기념관은 2013년 안용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개관된 것 으로 그의 업적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안용복은 독도를 왜세 로부터 지켜낸 조선의 백성이자 어부였다. 그는 1693년 울릉 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불법 조업 중인 일본 어선을 발견 하고 항의하다 오히려 일본으로 잡혀갔다. 허나 그는 일본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강경하게 주장하여 서계를 받아냈 다. 이것이 독도를 최초로 수비한 독도의용수비대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부터 1956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의 무단 침입에 맞서 독도를 수비한 민간 조직이다. 실제 1953 년 일본 해상 보안청 소속 숙기선이 독도에 접근하자 위험 사 격을 가해 이들을 격퇴시키고, 일본 순시함 세 대 및 비행기 한 대와 총격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는 등 목숨을 건 전투도 영토 를 지키기 위해 마다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그 시대 사람이었다면 안용복을 비롯한 의용수 비대처럼 용맹이 적에게 맞설 수 있었을까? 라고 웃으며 얘기 를 나누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웃음은 사실 자신 이 없음에 대한 서로에게 민망한 웃음이었던 것 같아 스스로 에게 실망감이 들기도 했다. 울릉도에서 바로 독도로 약 8시경 우리는 울릉도에 도착했고, 짐 정리 및 좌석 배치 를 받은 이후 바로 독도행 승선권을 받아들였다. 평소였으면 연속된 일정이 단지 피곤했을 테지만, 독도 하나만을 생각하니 기대감에 흥분이 될 뿐이었다. 그렇게 여객선에 탑승한 후 1시 간 30분가량 소요하여 독도에 도달하였다. 다만 독도는 다른 섬들과는 다르게 방파제가 존재하지 않아 접안이 쉽지 않았다. 한 번은 독도의용수비 대원들로부터 접안이 불가하다는 대답 을 들어 눈앞에 있음에도 밟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망감이 커 져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약 5분가량의 접안 시도 끝에 파도가 잠잠해져 순식간에 입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약 30분가량으로 정해진 관광 시간 때문에 주변에서는 인증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우리 독도아카데미 대학생 42기는 독 도수호 결의로 귤을 독도의용수비대에 전달하였다. 그 후 나는 개인적으로 독도의용수비대원과 담소를 나누었다. “이곳에서 는 바다를 통해 물을 끌어 먹는다”, “기상이 좋지 않으면 마시 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와 같은 사소한 대화를 잠시 나눌 수 있 었는데, 이에 나는 수비대원분들이 독도를 지키고자 하는 굳센 의지와 결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파도나 기상 상 황으로 인해 정해진 30분 보다 적은 10분가량만 독도에 발을 디딜 수 있었지만 그 순간 느꼈던 감정과 그곳의 풍경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주위에서 “살면서 독도 한 번쯤은 가봐야 한다”라는 말을 들 어왔는데 그 말의 뜻을 스스로 깨닫게 된 시간이었고, 우리는 앞으로도 독도를 수호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그들과 아 름다운 독도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김경관 기자
제 680 호 [ 영화로 세상 읽기 ] 우리는 ‘아서’인가 ‘조커’인가
토드 필립스 │ 스릴러, 드라마 │ 2019년 │ 미국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강한 인식을 준 영화 주인공에는 ‘조커’가 있다. 우리에게 ‘조커’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의 이미지는 미치광이, 광대, 악당 등으로 좋은 이미지는 없다. 하지만 이번 영화 <조커>는 그가 어떠한 경험으로 인해 조커가 되었는지 보여주는, 숨겨있던 내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어찌 보면 그저 DC 영화의 하나로써 누군가에게는 악당이고 누군가에게는 영웅일 수 있는 영화이지만, 나에게는 <조커>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사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주인공 ‘아서’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직업인 코미디언을 꿈꾸며 어머니를 부양하는 한 빈곤한 가정의 아들이다. 하지만 그는 정신이상으로 이유 없이 웃음이 새어 나오는 질병이 있는데, 그의 웃음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를 멀리하며 ‘아서’는 친구도 몇 없는 외로운 생활을 살아간다. 주변이나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 또한 따뜻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지하철 사건으로 주인공 ‘아서’는 ‘조커’의 삶으로 살아가게 된다. 감독 토드 필립스는 영화<조커>에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인터뷰했다. 주인공 ‘아서’는 그가 겪는 질병으로 지역지원상담소에서 매주 상담을 받으며 자신의 고립되고 외로운 일상에 관한 이야기나 일기장을 보여주곤 한다. 상담사는 늘 미간을 찌푸리고 이야기를 듣지 않은 채 똑같은 질문과 자신의 일자리에 관한 실업만 걱정하며 ‘아서’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다. 이처럼 영화 속에 정신질환자인 ‘아서’를 대하는 태도에는 전혀 배려가 드러나지 않는다. 약자에 대한 은근한 무시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 사회에서 주된 문제점이다. 영화 <조커>처럼 우리 사회에도 ‘강약약강’은 우리의 인식에 자리잡혀 있다. ‘강약약강’은 강한 상대에게는 약하고 약한 상대에게는 강함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회의 한 면을 보여준다. 약자에게 보여주는 강인한 면모와 강자에게 보여주는 여린 모습은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나만 잘되면 돼’와 같은 이기적인 면모 또한 사회에서 필수적인 모습으로 평가된다. ‘나만’이라는 이기심은 타인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주요인으로, 점점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내가’ 혹은 ‘나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세상으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영화처럼 우리는 약자에게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대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정립할 필요성이 있다. <조커>에서 ‘아서’가 의도치 않은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한순간에 ‘조커’가 된 것처럼, 우리도 의도치 않은 일로 인해 한순간에 타인에게 배려도 받지 못하고 인식 또한 좋지 않은 ‘약자’로 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니까. 한아름 기자
제 680 호 [책으로 세상 보기] 가장 중요한건 눈에 보이지 않아
가장 중요한건 눈에 보이지 않아 누군가 내게 모자를 보여준다면 나는 보아 뱀이 코끼리를 잡아먹은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아마, 나는 그런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이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 사회는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그 생각은 고정적이기 때문에 내게 모자는 그저 모자일 뿐 보아 뱀이라는 대답은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왕자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다. 책 속에서 어른들에게 어린왕자가 그림을 보여주며 무섭지 않으냐고 물어보면 무섭지 않다고 이야기하기 급급했고, 어린왕자는 보아 뱀의 뱃속에 코끼리가 있는 모습을 그려 보여주고 보아 뱀이 코끼리를 잡아먹은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춰라,’ ‘가서 공부나 해라.’ 라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그래서 나는 여섯 살 때 훌륭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말았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린왕자와 우리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 말에 말대꾸하면 안 된다.’ 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말대꾸의 기준은 무엇이고, 왜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일까? 사실 나는 말대꾸의 기준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것이 타인이 듣기에는 말대꾸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 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말대꾸를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면서 말을 아낄 것을 강요받아온 것일까? 말이란 본디 생각과 여러 추론 과정을 통해 나오는 산물 중의 하나가 아닐까. 말을 아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을 멈추고 주어진 사고를 가지고 대화를 하고, 사회를 구성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어린왕자도 결국 어른들의 사고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그림과 다른 것이 아닌 틀리다는 이유로 비난한 결과 한 아이의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책을 벗어난 우리의 현실 역시 다르지 않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까지 어른들은 ‘사’가 들어가는 직업을 좋아하고, 초등학생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하면 대통령과 우주인이 되고 싶다는 옛날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물론 사회의 발전에 따라 아이들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들의 꿈이 변화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아이들의 꿈이 변화한 것에 결코 어른들의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른들의 입김에 의해 입맛에 맞추어진 꿈을 가진 아이들을 사회의 꿈과 미래라고 하는 것 역시 우리 사회의 모순적인 모습이다. 결국 우리 사회는 어른들의 꿈과 미래라는 의미와 무엇이 다른가. 이런 사회와 어른들에게 지친 어린 왕자는 정말 ‘어린’ 왕자로 남기로 한 것이 아닐까. 자,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았다. ‘어른’ 왕자로 남을 것인가. ‘어린’ 왕자로 남을 것 인가. 엄유진기자
제 680 호 [기자석] 노동자 없는 ‘AI 강국’ 가능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8일 인공지능 콘퍼런스 ‘데뷰(DEVIEW) 2019’에서 “IT 강국 넘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혈압 증세로 쓰러진 독거노인이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살려달라고 외쳐 이를 119로 연결한 사례를 들면서 인공지능이 고령화 사회의 국민 건강, 노인 복지, 여성 안전, 범죄 예방 등의 문제를 해결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인공지능은 인류의 동반자”라며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인공지능은 독거노인을 구출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곳곳에서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편의’를 위해 인공지능이 노동자를 대체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편의는 노동자의 편의가 아닌 자본가의 편의이다.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갈취하는 것이 어떻게 편의가 될 수 있나. 임금지출을 줄이고 사회적 책임에서 도피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주장한 톨게이트 노동자들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가 “없어지는 직업인 것이 보이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이는 AI 예찬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예언했다. 기업의 효율적 기업 운영, 그리고 이에 무비판적인 정부는 노동자들을 위협에 몰아넣는다. 기업과 정부는 독거노인을 살렸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로 노동문제 전반을 숨기고 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은 11월 1일자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사람 없는 혁명’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지 자백했다. 그는 “스타트업에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를 뺏는 거다”라며 주 52시간 근로제를 비판했다. 이어서 자신이 과거 주 100시간씩 일하며 1세대 벤처기업을 일으켰고 현재 1조원 대 자산가가 되었다는 성공신화를 늘어놓았다. 그는 4차 산업 시대에서는 생산수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산수단이 없어도 자산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4차 산업 시대에는 노동자는 없다. 그렇다면 장병규 회사의 직원들은 노동자가 아니고 고용주는 자본가가 아니란 말인가? 지식으로 ‘생산’한 상품을 대량 제작, 유통하는 것은 ‘생산수단’이 아니면 무엇인가?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조차도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혁명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깊이 고민해야할 시점이 왔다. 그럼에도 4차산업혁명은 정재계는 물론 고등교육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손쉽게 인력을 공급받기 위해 대학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학 당국과 대학생은 살아남기 위해 그 구조 안으로 편입될 뿐이다. 4차산업혁명을 가르치는 교육에서는 놀랍게도 노동자가 없다. 모두가 지식을 통해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수단’이고, 경영가이자 자본가이다. 교육에서는 기술과 경영만 강조될 뿐 그 안에 사람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거세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면 노동자가 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발간한 ‘일의 미래 글로벌 위원회 보고서>’는 “노동자의 기본권, 적정한 생활 임금 보장, 일하는 시간의 제한,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환경, 전 생애에 걸친 사회보장, 숙련 향상을 위한 평생 교육, 좋은 일자리”를 증진할 수 있도록 “기술 변화를 관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기술 발달로 소수 자본가 계급이 부를 쉽게 독점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고, 기술이 사회적 평등에 기여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노력은 기업과 시장이 하지 않는다. 정부가 이를 이끌어야 하고 교육은 고민하고 비판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채 ‘AI 강국’이 된다면 대다수의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생계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다면 4차산업혁명에 최적화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낙오자가 될 뿐이다. 정부는 인공지능을 인류의 동반자로 만들고 싶다면,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해람 기자
제 680 호 [교수칼럼] 구속은 창작의 조건이다
건조한 공학전공자로서의 삶을 사는 가운데, 내 일상 속에 동기부여이자 활력이 되어주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약 20여년간 꾸준히 연주해 온 색소폰이다. 나의 색소폰 연주 분야는 소프트 재즈 색소폰이라고 할 수 있다. 원곡의 이야기 속에, 소프트한 재즈를 가미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가는 연주를 소프트 재즈라고 한다. 아마추어 색소폰 연주활동을 하면서 항상 가슴에 담고 있는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화려한 연주 테크닉도 빠른 손놀림도 아닌, 어떤 곡을 연주하기에 앞서, 가장 단순한 기본기, 즉 호흡과 리듬 그리고 박자를 매일의 연습 가운데 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즈만큼 연주자의 개성과 연주자가 바라보는 또는 느끼는 곡에 대한 느낌이나 해석이 자유로운 장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재즈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무대를 유심히 바라보면, 한가지 눈치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통상적으로 재즈니까, 즉흥연주니까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악보라는 것이 덜커덩 놓여있다. 그런데, 그 악보는 거의 비어 있고 멀리서 본다면 그냥 백지나 조금 끄적거린 것 같은, 무언가 쓰다만 것 같은 악보처럼 보인다. 게다가 연주자들은 연주하는 동안 이 악보를 보통의 연주자들이 보는 것처럼 집중해서 악보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악보는 재즈 연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곡의 중심이 되는 멜로디와 코드(화음)이 적혀있고, 재즈 연주자들은 각각의 멜로디의 중심과 화음의 범위 안에서 자유로운 연주를 하게 된다. 이런 한장 또는 두장 짜리 악보를 리드시트라고 한다. 재즈에서 들려지는 자유로운 연주는 바로 이 리드시트에서 철저하게 약속한 멜로디와 리듬과 화음이 서로를 배격하지 않는 가운데 어쩌면 사전에 철저히 훈련되고 약속된 그루부를 형성한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2015년에 미국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허비행콕과 칙 꼬리아가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한 무대에 서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듯한 몽롱한 연주 가운데 이 둘의 무대는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멜로디를 다른 이야기로 그려가고 있다는 것을 추상적인 관점에서 점증적인 방법으로 알아갈 수 있는 연주로 이어져갔다. 딱 한장의 리드시트에 맞춰진 두 사람의 합주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하모니였다. 리드시트는 멜로디의 가장 기본이 되는 투파이브원(2-5-1)으로 구성되는 가이드톤이 있고, 재즈로서의 맛을 잘 살릴 수 있는 텐션과 도미넌트 5음 체계를 적용해서 멋진 즉흥연주(임프로비제이션)를 구사해 내게 하는 기본 원칙이다. 철저한 규칙안에서 최대의 자유 혹은 한계를 뛰어넘는 화합의 새로움을 누릴 수 있는 재즈 연주의 원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러한 자유는 규칙이라는 범주안에서 최대의 강점을 갖게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이것이 곧 자율이라는 개념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최근에 손으로 무엇을 만들기 보다는 기계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창작해내는 일에 익숙하다. 특히 3D 프린팅, 컴퓨터 캐드, 일러스트 등이 보편화 되면서 더욱 일상적인 일이 되어 가고 있다. 과거의 건축이나 디자인 양식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매우 획일화 되어 있었지만, 최근 컴퓨터와 3D 프린팅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면 상상의 한계는 없어 보인다. 단순한 형상에서부터 형이상학적이고 기이한 문양과 양식이 자유롭게 연출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명확한 한 선이 있는데, 정확한 가이드 라인을 지키지 않으면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 작가 또는 제작자의 꿈은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기이한 모양을 디자인해서 출력물을 얻으려고 한다면, 기계의 작동의 규칙뿐만 아니라 그래픽 또는 수학적이고 물리학적인 도형의 생성에 관한 조건이나, 3D 프린터 출력 조건이 지켜져야만 구현이 된다는 것이다. 즉, 무제약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절대 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최근의 우리의 일상에서 빈번하게 접할 수 있는 기계나 로봇은 재즈적인 관점에서 무한한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무한한 가능성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필연적인 자기 규제적인 법칙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예술가에게 더욱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화법을 완성하기 전까지 거장 밀레의 그림을 수도 없이 모사했고, 그의 규칙을 자신의 것으로 규칙화해서 습작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만이 갖는 자유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즉, 기존의 규칙 속에서 임프로비제이션화 된 자신만의 그림은, 자신의 화법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철저한 가이드 라인과 자신의 그림의 독창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텐션과 꾸밈의 조화가 이루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구속 또는 규칙은 획일적이거나 통제라기 보다는, 고유성과 확장 가능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양문 형식의 통로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 통로는 공명(또는 공감)되는 새로운 조화를 발견해 낼 수 있는 발전적 원리일 수 있다. 염기원 교수 (휴먼지능로봇공학과)
제 680 호 [사설] 헤아림의 결핍, 헤아림의 미덕
사회가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할수록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합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만큼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가치의 충돌로 인해 사람들의 감정이 격앙된 탓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세상은 더 넓어졌으나 시야는 더 좁아진 느낌이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현명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가치의 실종 시대에 모두가 극도로 피로한 상태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은데 가슴이 답답하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이들이 나갈 길을 생각하면, 마치 안개라도 자욱하게 낀 것처럼 시야가 흐려져서 미안하다. 이 안개를 걷어낼 시원한 바람은 언제쯤 불어올까. 사막에 한 두 방울 물이 모여 오아시스를 이루고 수많은 생명을 키워내듯 우리가 또 다시 꿈을 품을 방도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꿰매져야 한다. 우리는 왜 이리도 분열된 지경에 처하게 됐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헤아림의 결핍’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가치의 실종 시대에 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사람도 있고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누구도 나무만 본 적이 없고, 누구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고 말한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무리에 대해 가차 없이 공격을 해댄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반대편 무리에 서있는데 그 많은 이들을 무슨 권리로 무시할 수 있을까, 그들이 왜 반대를 하는지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일까. 타인에 대한 헤아림의 결핍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을 외면하는 일이 아닌가. 진심으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말이 상대를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상대를 몰아세우기에 급급하다. 누군가는 촛불을 들었고, 또 누군가는 태극기를 들었지만 국민을 앞세워 또 다른 국민을 모욕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정치인들이 너무 쉽게 쓴다. 반대 의견을 가진 다수의 국민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헤아림의 결핍이 극에 달한 모습이다. 상대를 무시하면서 자신만 옳다고 말하는 불통의 시대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이성은 마비되고 마침내 분노하거나 좌절하고 말 것이다. 말할 자유를 이런 식으로 누려서야 되겠는가? 소음에 가까운 말을 여기저기 퍼뜨리며 그러한 상황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상황을 마땅히 두려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알리는 데만 열중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하며 따르는 사람들만 생각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모욕한다. 진영의 이분법과 선악의 이분법이 팽배해진 이 시대에 각자 자기 말만 늘어놓으면서 국민을 거론하는 이 무책임함과 오만함을 대체 어찌 해야 할까. 국민을 앞세우기 전에 지금의 분열된 상황을 진지하게 돌아보며 이성적으로 논리를 따져 무엇이 정의로운 일인지 모색하고 숙의하는 시간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꿈을 이루며 희망을 담보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헤아림의 미덕’이 필요하다. 반성도 없고 헤아림도 없는 현실 앞에서 청춘들에게 한없이 부끄럽지만, 우리의 청춘은 헤아림의 결핍에 빠지지 말고 인간이기에 끈을 놓으면 안 될 존엄성의 가치를 중시하기 바란다. 극복해야 할 일과 이루어야 할 일이 있을 때 상대를 누르며 이기겠다는 전략 말고, 상대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며 토론을 끌어내고 문제의 본질과 자초지종을 논리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지성이기를 바란다. 헤아림의 미덕과 함께 빛나는 지성을 갖춘 우리 젊은이들이 미래의 상생 사회를 열어가기를 기도한다.
제 680 호 [상명만평] 이 별들은 우리 꺼다
황인선 (만화 3)
제 679 호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
영화 <김복동>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확 불타올랐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사그라진다. 그리고 그 대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다. 모든 사회적 이슈가 이렇듯,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 역시 막 대두하기 시작되었을 때에는 세계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싸움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점점 지쳤고 ‘위안부’라는 이 세 글자는 누군가의 관심 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로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줄 로만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본다면 전혀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김복동’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들에 대해서 잘 알려주고 있다. 수요시위에 관한 이야기, 대사관 시위에 관한 이야기, 평화나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소녀상과 한일 ‘위안부’ 합의에 관한 이야기. 영화 ‘김복동’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김복동 할머니를 통해서 풀어낸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김복동 할머니의 일생의 일부를 담아내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밝힌 뒤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 며 일본의 만행에 대해서 밝혔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노력과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의 노력, 같이 싸워주었던 시민 단체와 학생들의 노력 끝에 일본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 일본이 취한 조치는 사죄가 아닌 ‘협정’이었다. 협정은 할머니들의 의지와 의견과는 상관없이 진행되었다. 할머니들은 협정 사실과 협정의 내용을 뉴스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정부는 할머니들을 앞세워 배상금을 받아냈지만, 그 배상금을 아직도 할머니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있 다. 그리고 돈이 아닌 사과를 요구했던 할머니들에게 일본은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1991년 첫 증언으로 시작되었다. 그 뒤로 수년간 많은 사람이 싸워왔지만 아직도 일본의 사과는 못 받아낸 상황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 역시 올해 1월, 9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건강이 안 좋아 병실 에 누워계시던 할머니가 남긴 말씀은 ‘집에 가야 한다.’였다. 집에 가야 한다고 할 일이 아직 남았다고,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아직 남아있는 그 ‘할 일’은 누가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일까. 방효주 기자
이 사이트는 자바스크립트를 지원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을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