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6 호 새로운 주체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리움미술관 피에르 위그展
새로운 주체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리움미술관 피에르 위그展
프랑스의 현대미술 작가 피에르 위그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리미널》이 2월 27일부터 7월 6일까지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미술관에서 선보인다. 피에르 위그는 오랫동안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는 리움미술관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진행되며, 인공지능(AI) 기술이나 생명체 등을 이용해 영상과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을 결합한 작업을 보여준다.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하는신작 <리미널>(2024–현재)과 대표작 <휴먼 마스크>(2014), 총 12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위그의 세계로 초대한다.
관람자와 상호작용하는 전시
▲<리미널>(2024-현재)의 한 장면(사진: 변의정 기자)
전시장에 들어가자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얼굴이 없는 인간의 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특별한 이야기 없이 인물이 방황하는 이 영상은 작품 <리미널>(2024-현재)이다. 이 작품은 전시 공간의 센서가 감지하는 소리와 빛의 변화에 따라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형체의 움직임과 시선이 결정되어 이루어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형체은 외부 조건을 학습하고 기억을 쌓아가는데, 이는 AI의 학습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전시에는 황금색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인 <이디엄>이 된다. <이디엄>은 가끔씩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데, 이는 인간의 발성과 신경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성된다. 이번 전시 제목 ‘리미널’은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한다. 전시의 제목처럼 위그의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고정된 작품들과 달리 유동적인 전시장의 환경에 AI를 활용하여 더욱 예측할 수 없게 반응하고 있다.
▲사람이 쓴 황금색 마스크에서 생성되는 <이디엄>(사진: 변의정 기자)
AI외에도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휴먼 마스크>(2014)는 동일본 대지진을 배경으로 폐허가 된 한 일본의 후쿠시마 식당에서 일하는 원숭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가면과 검은 옷을 입은 모습은 마치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U움벨트-안리> 이미지는 <암세포 변환기>가 전송하는 세포분열 데이터와 센서가 포착하는 외부 조건과 만나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카마타>에서는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된 인간 해골을 중심으로 기계가 장례 의식을 치르며 인간의 유해를 탐사하는 모습을 담았다.
인공지능으로 질문하는 ‘인간’
▲리움미술관 《리미널》 전시 전경(사진: 변의정 기자)
리움미술관은 피에르 위그에게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 있는 환경이라 설명한다. 이 세계 대한 은유로 ‘수족관’이라는 개념과 이미지를 가져온다. 특별히 구성되어 있지만 어떤 일이 발생할 지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인간이 주도해왔던 세계가 비인간들로 하여금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지속적으로 배우고 진화하며 복합적인 환경을 형성한다. 이 전시에서 무엇보다 충격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이디엄>이라는 작품을 나타내기 위해 사람이 기계처럼 가만히 서있는 모습이다. 사람과 기계가 역전된 모습으로 이는 점점 인간의 가면을 쓴 존재들이 인간인지 비인간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려준다. 결국 피에르 위그는 가면을 만든 존재인 인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새로운 주체성’이란 인간만의 특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점점 보편화되는 오늘날 현실의 기술적·철학적 고민을 담아낸다.
변의정 기자